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폐허에서 부활하여 (문단 편집) == 역사 == [[1949년]] [[연합국]]에 점령되어 [[연합군 점령하 독일|군정이 실시되던 독일]]의 [[소련]] 점령 지역에 독자적으로 수립된 [[공산주의]] 정권인 [[동독]]은 기존에 쓰이던 [[독일인의 노래]]가 봉건적, 국수주의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며 새로운 국가를 제정하기로 했다. [[서독]]이 기존 독일의 역사적 국가, 국기, [[독일 축구 연맹|축구협회]] 등 군대를 제외하고 나치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통을 최대한 이어가려고 했던 반면 동독은 국가, 국기,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축구협회]] 등 모든 상징물이나 조직에서 과거 독일 역사와 단절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나갔다. 국가, 국기는 물론이고 축구협회도 서독이 이전 독일 국가 대표팀의 유니폼, 기록 등을 물려받았지만 동독은 독일의 이전 역사와 단절된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다만 동독은 '''군복만은''' [[나치 독일]]의 것을 사실상 그대로 채용했다. 헬멧을 제외하면 [[국가인민군]]은 [[독일 국방군]]과 똑같은데 사실 그 헬멧도 원래 [[나치 독일]] 말기에 개발된 것이지만 나치가 망하는 바람에 실제 채택되지 못했던 것을 동독이 가져와 사용한 것. 어쨌든 동독은 새로운 동독 국가를 제정하기로 했는데 이에 시인이자 공산당원이었던 요하네스 R. 베허(Johannes R. Becher)가 작사한 가사를 바탕으로 오트마어 게르스터(Ottmar Gerster)와 [[한스 아이슬러]]가 각각 작곡한 곡이 제안되었고 이 중에서 아이슬러의 곡이 '폐허에서 부활하여(Auferstanden aus Ruinen)'라는 제목으로 [[1949년]]에 공식 국가로 채택되었다. 가사를 쓴 요하네스 베허는 [[1954년]] 동독 문화부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동독과 서독과의 격차가 커지면서 동독인들의 탈주가 이어졌고 이에 동독 정부는 현상 유지, 즉 통일을 반대하고 분단이 고착화된 상태가 지속되기를 원하게 되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세운 것은 동독의 분단 고착화 및 현상 유지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동독은 처음에는 서독을 '미수복지구'이자 통일해야 할 지역이라고 했지만 [[1970년대]] 이후에는 서독을 '''[[외국]]'''이라고 표현했고 심지어 [[동독]]의 [[국정교과서]]에서 공공연하게 서독을 BRD([[독일연방공화국]])라고 지칭했으며 정부에서도 서독 관련 업무를 [[외무부]]에서 처리했다. [[대한민국]]과 [[북한]]과는 완전 딴판. 이런 상황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동독 국가의 가사는 분단 고착화 및 현상 유지 정책을 펼쳤던 동독 정부와는 정책적인 지향점이 맞지 않게 되었고 결국 [[1973년]]을 기점으로 동독은 국가에서 가사를 삭제하고 제창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기악으로 선율만 연주되도록 했다. 그러다가 [[동유럽 혁명]] 및 [[독일 재통일]]의 과정인 1989년 라이프치히 시위나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에는 일종의 [[민중가요]]로 널리 불렸다. 직후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1당 독재체제가 붕괴되면서 [[1990년]] 1월에 다시 가사가 붙었다. 그러나 곧바로 동서독이 [[통일]] 논의를 하면서 국가에 대한 논의도 다시 시작되던 시점에 통일 문제가 현재진행형임을 나타낸 가사 때문에 동독 국가를 지정하자는 움직임을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정면으로 거부했다.[* 막상 [[독일 재통일|통일]] 문제가 현재진행형임을 나타내는 [[독일 기본법]](Grundgesetz)은 정식 헌법(Verfassung)으로 대체하지 않고 통일 이후에도 그대로 쓰는 모순적 행보를 보인다(...)] 대신 동독 국가를 서독 국가에 같이 넣자거나 아예 다른 노래를 택하자는 등의 대안이 나왔지만 결국 [[서독]]에서 쓰던 국가([[독일인의 노래]][* [[요제프 하이든]] 작곡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오헝제국]] 때부터 독일 민족의 상징으로 쓰이던 유서깊은 노래이다.])를 그대로 쓰기로 결정되었다. 동서독 분단기에 서독은 과거부터 독일에서 국가로 사용되었던 [[독일인의 노래]]를 계속 국가로 썼다. 다만 1절은 [[나치 독일]]을 연상시킨다는 비판, 2절은 시대착오적 여성관과 술이 나오는 가사에 대한 비판이 있어서 별 논란이 없는 3절만 채택하였고 통일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통일 이후 동독 국가는 의전용으로 연주될 일이 없어졌고 위의 음원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혹시라도 이 곡을 가창할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인민의 적' 운운하는 2절은 빼고 부른다. 하지만 가사가 반성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역시 [[동구권]] [[국가(노래)|국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련 국가]]는 [[공산주의]] 이념이 대놓고 드러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련 국가의 가사가 호전적인 건 아니다.] 폐허에서 부활하여는 작사가인 베허가 통일된 독일을 위해 가사를 썼기 때문에 이념적 색채도 약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